설계사무소에서 그려준 도면을 들고
산길을 올랐습니다.
처음 마주한 건 우뚝 솟은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온 참나무 숲이었습니다.
도면대로라면 베어질 운명에 처한 그 나무들 사이에서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다시 산에 오른 저희들의 손에는 도면대신 파란 끈이 들려있었습니다.
어른 품으로도 안을 수 없게 자라난 나무들 하나하나에 그 끈을 매면서 다짐했습니다,
항상 지켜주고 함께 할 거라고.
그리고 끊임없는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큰 나무를 베지 않으면 손해가 난다는 벌목 사장님과 나무가 있는 상태로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장비 기사님을 설득해 겨우 일을 시작했지만 공사 기간은 계속 늘어만 갔습니다.
나무 사이 좁은 공간에 맞추면서 데크의 크기는 작아지고 사이트 수도 당초 계획보다 수십 개가 줄어들자 저희를 도와주시던 분들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깟 나무 좀 베어내면 어떠냐고.
그럴 때마다 파란 끈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진심을 누군가는 알아줄 것이라고.
그 후로 긴 시간이 흐르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제 드디어 그 끈을 풀었습니다.
반듯하고 깔끔했던 도면 속 캠핑장보다 많이 불편하고 못난 모습이지만 아름드리 나무 그늘 아래에서 저희는 참 행복합니다.
어리석은 진심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동네 어르신은 의심이 가득찬 눈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산에서는 돌멩이 한 톨 나갈 수 없다고.
저희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고용산 한 켠은 예전 채석장의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채 있었으니까요.
어르신들께 웃으며 약속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의 조금은 못미더운 눈길 속에 일은 시작되었습니다.
어르신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습니다.
땅을 파면 돌뿌리가 걸리고 전래동화 속에서나 들어보았던 집채만한 바위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이러다간 바윗덩어리들을 이고 지고 있어야 할 거라는 볼멘소리가 현장에 가득해졌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결심했습니다, 그 돌들을 이고 지고 살아가기로.
고용산은 결국 돌산인걸요.
설계사님을 설득해서 옹벽대신 돌을 쌓았습니다. 너무 큰 돌은 둘러가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사이트는 좁아지고 울퉁불퉁한 바위들이 가득하게 되었지만 이제 그 돌 틈으로 코스모스가 올라옵니다.
그리고 그 집채만한 바위들은 이제 저희 캠프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모나고 못생긴 모습입니다.
저희는 그래도 웃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이들은 도시에서 자랐습니다.
처음 캠핑을 가던 날, 집 근처에서 평소 보던 귀뚜라미보다 두세배는 큰 괴물 ‘괴뚜라미’의 등장에 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화장실을 뛰쳐나왔습니다.
한여름 땀이 비오듯 와도 한 번 놀란 아이들은 샤워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제 곁만 맴돌았습니다.
저들이 이 숲의 주인이라고 타일러 보았지만 아이들은 좀처럼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자기전에야 마지못해 제 손을 꼭잡고 간 화장실에서 밝은 불빛 아래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곤충들을 피해다니던 막내는 텐트로 돌아오며 중얼거렸습니다, “괴뚜라미들이 길을 잃었나봐..”
다음 날 아침, 홀로 찾은 샤워장 구석에는 길을 잃은 숲속 친구들이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화장실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혹시 몰라 모든 문에는 에어커튼도 달았습니다.
요금 걱정을 하시는 전기 사장님께는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저희 숲속 친구들은 길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